

두 명의 한달치 분유로만 가득한 수트케이스 하나
네 명의 간단한 옷들과 물건들로 채운 수트케이스 하나
유모차 두대
애들이 잘 먹이고 안아주면 얌전했었어서 10시간 내내 안고 있었더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았던 비행이었다.
일년 전에 남편과 둘만 왔을 때랑 비슷하게, 아기들에게 여전히 굉장히 프랜들리했고,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도 탈 수 있었다. 아무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게 신기할 정도였다.

임신+출산 후 4개월,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임산부, 아기엄마로써의 기억은, 좋지만은 않았다.
뭔가 죄인이 된 느낌?
버스, 지하철에서 양보 한 번 받은 적 없고 (바라지도 않았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 땐 젊은이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왜 그렇게 째려보는지..) 집 밖으로 외출하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했고, 다녀와선 매번 울었다.

똑같은 육아인데,
왜 캐나다에서는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똑같이 하루 수십개의 젖병을 닦고 소독하고, 기저귀를 갈았다.
아기띠를 하고 유모차를 끌고, 하루 2만보 넘게 걸었음에도 즐거웠다.
아무도 남아인지 여아인지 묻지 않았고, 누가 첫째고 둘째인지 묻지 않았다. 딸을 하나 더 낳으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추운데 핏덩이를 데리고 밖에 왜 나왔냐고 하지 않았다.
추운데 춥게 입고 다니건, 더운데 덥게 입고 다니던, 서로 관심 없었고
내 인생, 내 성격, 내가 주장하는 것 들을 유난스럽다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육아하는게 힘들었던 이유는,
가족, 지인, 타인의 선 넘는 무례한 관심과 부정적 예언가 발언, 자기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조언매니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기 힘들 정도로 없는 여유
아이는 부모만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인식으로 키우는거라는 걸 많이 느꼈다.
나야 이미 성인이 되어 괜찮지만, (사실 안 괜찮을 수도)
내 아이들은 쫓아가기 급하고, 서로에게 엄격한 평가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엔 기저귀를 떼야하고, 걸어야하고, 말을 해야하고, 보통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하고…
한국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들’, ‘보통 다들’은 어떤 존재일까? 왜 그것만을 기준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청약에 관심 없는 우리들을 보고 철 없는 바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놈의 아파트. 우리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살 능력도 없다.
당장 내가 내년에 살아있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10년 뒤 20년 뒤만 바라보고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싶은 걸 하면서 ‘지금’을 느끼며 살고 싶어졌다.
나는 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에 가고싶어 했는지,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대기업 인턴, 서류, 면접 등에 왜 목을 메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건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해야한다고 했다.

**4개월 아이들과 밴쿠버 한달살이 스토리는 궁금해하는 분들이 생기면 추가로 업로드 예정**
많은 걸 느낀 밴쿠버 한달 살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서부터 애들을 재우고 나면 해가 뜰 때까지 이민에 대해 검색했었다.
우리가 캐나다에 이민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우리는 4년제 상경계열 대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30대
워킹홀리데이를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의사, 간호사, 변호사, 교수, 회계사, 디자이너, 기술자 등 캐나다에서 환영하는 직군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고싶다가 아니라 난 가야만 했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과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멀어지기로 마음 먹었다.
[안 괜찮아]
애들 돌이 지나고부터, 몸이 너무 안좋아졌다. 내가 예민해서 느껴진게 아니라, 정말 그 누가 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살이 빠지고, 계속 땀이 났다. 오전 11시만 돼도 하루의 에너지는 다 소진되었고, 숨이 차서 애들한테 책 한 줄도 읽어줄 수 없었다. 이러다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 어린 애들을 남편한테 맡겨두고 혼자 떠나면 어떻게 되려나 상상도 많이 했다.
숨이 안쉬어지는게 가장 무서웠다.
애들은 엄마만 쳐다보고 리액션 해주기만을 기다리는데, 웃어 줄 에너지도 없었고, 웃으면 숨이 너무 찼다. 동네 내과에 가서 혈액검사를 해보니, 바로 큰 병원에 가보라고 의뢰서를 써주셨다. 수치가 높은 갑상선항진증이었다.



임신하고, 사업하고, 쌍둥이 출산하고 1년, 이 기간이 나한테는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난 이렇게 숨막히게 살고싶지 않았고, 지금을 즐기며 살고 싶어졌다. 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